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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6. 슈퍼휴먼의 외로움: 도움을 주고받는 생활

많은 일을 해내도 혼자 감당할 필요는 없다. 힘든 날에도 도움을 주고받는 생활.

· By Simpson Gyusup Sim · 11 min read

새벽 세 시였다. 화면에는 코드가 흐르고 있었다. AI와 대화하며 서비스를 만들고 있었다. 하나가 작동하면 다음 기능이 떠올랐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서 손을 멈추지 못했다.

노트북을 덮고 침대에 누운 뒤에도 일이 계속됐다. 방금 해결한 문제와 다음에 만들 기능이 머릿속에서 돌아갔다. 몸은 지쳐 있는데 잠은 오지 않았다.

이런 밤이 일주일 넘게 이어졌다.

더 많이 만들 수 있게 된 사람

다오랩에서 우리는 AI와 일하며 개인의 역량을 넓히는 모습을 ‘슈퍼휴먼’이라는 주제로 연구하고 있었다. 다오랩은 AI 시대에 함께 일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모임이다. 한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게 되면 조직과 개인은 어떻게 달라질까.[1]

연구 주제가 내 생활이 됐다.

개발을 직업으로 삼지 않았던 내가 실제로 작동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었다. 몰입하는 즐거움이 컸다. 처음 배우는 동안에는 특히 그랬다. 흐름이 끊기면 다시 어디까지 했는지 파악해야 하니, 한번 잡은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밤까지 일했다. 잠을 충분히 못 자니 다음 날 판단이 흐려지고 효율이 떨어졌다. 낮에 못 한 일을 만회하려고 다시 밤까지 일했다.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속도에 맞춰 내 하루도 계속 늘리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만나지 않고 있었다.

내 속도로만 보내는 하루

AI에게는 새벽에도 일을 부탁할 수 있었다. 답을 받고 바로 다음 작업으로 넘어갔다. 다른 사람의 일정에 맞추지 않고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 편했다.

사람을 만나려면 시간을 맞춰야 한다.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설명해야 하고, 다른 의견이 나오면 들어야 한다. 일 얘기를 하다가 잡담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혼자 빠르게 작업하는 데 익숙해지자 그런 시간을 뒤로 미루게 됐다.

그런데 그 시간에만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내가 묻지 않았던 이야기, 내 설명과 다른 시각, 별일 없이 지낸 친구의 안부였다. 사람을 만나서 반드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같이 웃는 저녁이 좋았다.

AI와 일하면 하루가 끝날 때까지 누구를 만나지 않아도 많은 것을 만들 수 있었다. 그날을 생산적인 날이라고 부를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들만으로 내가 살고 싶은 생활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멈추는 시간을 먼저 넣다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잠이 부족했고, 운동을 덜 하니 몸이 무거웠다. 화면 안에서는 결과물이 늘고 있었지만 나는 지쳐갔다.

명상을 다시 시작했다. 코딩을 멈추고 노트북을 덮은 뒤, 바로 침대로 가지 않고 10분을 앉았다. 아무 작업도 더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다음 기능을 생각하는 흐름에서 빠져나와 하루를 마치는 연습이었다.

종이책도 다시 읽었다. 화면에서 눈을 떼고 서사와 철학을 읽으며 하던 일과 거리를 뒀다. 운동과 사람을 만나는 시간도 일정에 넣었다. 남는 시간에 하려고 하면 하루 끝까지 자리가 나지 않았다.

지금은 손가락에 끼는 오우라 링으로 수면과 몸의 변화를 기록하기도 한다. 회복 상태를 나타내는 점수가 낮으면 고강도 운동을 피하는 식으로 하루의 강도를 조절한다. 직접 느끼는 피로와 함께 살펴볼 단서가 생겼다.[2]

일은 새 기능 하나로 진전이 보였다. 내 생활에서는 잘 잔 밤, 운동한 날, 친구를 만난 저녁도 그만큼 중요하게 봐야 했다.

발리에서 만난 생활

2026년 2월, 쉬고 싶어서 발리를 찾았다. 운동하고 몸을 돌보는 시설과 공동 작업 공간이 함께 있는 Omni라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일과 운동,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한 건물 안에서 이어졌다.

공동 작업 공간에서는 AI에게 개발을 맡기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쳤다. 오전에 나란히 코딩하던 사람들이 점심때 수영장에서 다시 만났다. 찬물에 몸을 담그는 시설에서 나온 사람이 카페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따로 약속을 만들기 전에도 동선에서 사람이 만났다.

같이 간 친구는 디자인의 방향을 정하고 작업을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다. 내 부트캠프를 소개하고 신청을 받는 웹페이지에 대해 의견을 듣고 싶었다. 완성된 디자인에 대한 평가만큼, 그 친구가 어떤 점을 보고 판단하는지도 궁금했다.

전문가가 일을 할 때 무엇을 보고 어떻게 판단하는지 질문하는 ‘인지 과업 분석’이라는 접근을 참고했다.[3] 친구는 화면과 목소리를 함께 녹화하면서 피드백을 줬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같이 들을 수 있었다. 그 친구의 시간을 귀하게 쓰면서도 전문성을 배우는 방식이었다.

운동하고 명상하고 식사를 한 뒤 집중해서 일을 해본 날이 있었다. 평소보다 기운이 빨리 떨어지지 않았다. 같은 시간 동안 일해도 한국에서 새벽까지 달리던 때와는 질이 달랐다.

저녁이면 친구들과 바닷가 근처의 라이브 바나 야외 레스토랑에서 시간을 보냈다. 잠깐 멈추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하는 나와 쉬는 내가 같은 생활 안에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아파트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도 꾸준히 간다. 발리의 공간을 통째로 가져올 수는 없어도, 운동하고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내 생활에 넣을 수는 있었다.

행복한 사람 곁에서 힘을 얻다

나는 내가 먼저 행복해야 다른 사람의 행복도 도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늘 내가 먼저 기운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힘든 날에는 사람에게 갈 수가 없다.

내 경험은 달랐다. 내가 지쳤을 때 밝은 사람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운을 받았다. 시에르가오에서 사람들과 편하게 웃던 시간도 그랬다. 내가 완전히 정리된 상태여야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의 상태에 따라 기대고 힘을 보탤 수 있었다.

틱낫한의 《No Mud, No Lotus》를 읽으며 남은 것도 힘든 날에는 도움을 요청하라는 말이었다.[4] 괜찮은 척하며 멀어지기보다 지금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하거나 함께 있어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혼자 일을 해낼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다고 해서 혼자 잘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오래 혼자 일할 수 있게 됐으니 사람을 만날 이유와 시간을 스스로 챙겨야 했다.

내게 필요한 모임은 같은 도구를 잘 쓰는 사람들만 모이는 곳도 아니었다. 다른 일을 하는 친구에게 배우고, 같이 운동하고, 일을 그만하고 저녁을 먹으러 갈 수 있는 관계가 좋았다. 발리에서 친구의 디자인 판단을 배운 시간과 함께 저녁을 보낸 시간은 모두 내게 필요했다.

만들고 싶은 생활도 있다

새벽 세 시에 무언가를 만들어내던 짜릿함을 기억한다. 지금도 만드는 일이 좋다.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는 즐거움을 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 옆에 잠 못 드는 밤이 있었고,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일이 재미있다는 이유로 그 대가를 계속 작게 보고 있었다.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게 됐다면 무엇을 덜 해도 되는지도 정하고 싶다. 새 도구가 생길 때마다 일을 하나 더 추가하는 대신, 그 시간에 쉴 수도 있고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럴 수 있으려고 도구를 익힌 마음도 있었다.

나는 여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노트북을 덮은 뒤에도 살고 싶은 하루가 남아 있으면 좋겠다.


주석과 더 읽기

  1. 다오랩 7기 공동 연구 결과물.
  2. 오우라, 회복 점수의 구성과 의미.
  3. Beth Crandall·Gary Klein·Robert R. Hoffman, 《Working Minds: A Practitioner's Guide to Cognitive Task Analysis》. 전문가의 판단 과정을 질문하고 관찰하는 방법을 다룬다.
  4. 틱낫한, 《No Mud, No Lotus》. 도움을 요청하는 가르침은 플럼빌리지의 저자 강연 「Suffering Can Teach Us」에서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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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son Gyusup Sim
Updated on 2026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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