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 일이 잘 풀리던 시기가 있었다. 클라이언트가 늘고, 의뢰가 쌓이고, 통장 잔고가 올라갔다. 커피 미팅이 호텔 라운지로 옮겨갔다. 택시를 더 자주 탔다. 좋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다. 누군가에게 대접받고, 나도 누군가를 대접했다.
그런데 남는 돈은 전과 비슷했다. 수입이 늘어난 자리를 지출이 채웠다.
좋은 곳에서 먹고 만나는 동안에는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더 벌어야 했다. 하기 싫은 일도 쉽게 거절하지 못했다. 돈을 더 쓰게 된 만큼 다음 일을 고를 여유는 줄었다.
배부르게 먹기 시작한 것이다.
생활비가 다음 일을 고르게 두지 않기
수입이 늘면 지출을 늘릴 이유도 생긴다. 더 편하게 이동하고, 더 좋은 곳에서 만나고, 그동안 미뤄둔 것을 산다. 하나씩 보면 그럴듯하다. 하지만 늘어난 지출이 매달 당연한 일이 되면 다음 달의 나도 그만큼 벌어야 한다.
내가 벌고 싶은 이유와 벌어야 하는 이유가 달라진다.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벌다가, 이미 커진 생활을 유지하려고 일을 받는다. 수입은 늘었는데 선택은 좁아질 수 있다.
호텔 라운지에서 마신 커피 한 잔이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무엇에 돈을 쓰고 싶은지 정하기 전에, 벌리는 만큼 쓰는 생활이 굳어지는 것이 문제였다. 가격표를 볼 때 오늘 낼 수 있는지만 보았다면, 이제는 이 지출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일을 받아야 하는지도 봐야 했다.
돈을 남겨두면 시간을 살 수 있다. 당장 들어온 일이 내게 맞는지 생각할 시간, 다른 제안을 기다릴 시간, 잘 모르는 분야를 배워볼 시간이다. 내게 절약이 쓸모 있는 이유는 그 여유 때문이다.
얼마까지 잃을 수 있는가
새로운 일을 할 때는 기대가 앞선다. 이걸 잘하면 얼마나 벌 수 있을지, 다음에 어떤 기회가 생길지 생각한다.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일수록 상상 속에서는 쉽게 커진다.
그때 질문 하나를 함께 놓는다.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어디까지는 감당할 수 있는가.
경영학자 사라스 사라스바시가 연구한 창업자들의 의사결정 방식에는 ‘감당 가능한 손실’이라는 원칙이 있다. 가진 자원으로 행동하며 기회를 만들어가는 이펙츄에이션이라는 접근의 일부다. 불확실한 수익을 계산하는 것과 함께, 내가 투입할 수 있는 한도를 정한다.[1]
이 질문은 지금 실험하고 있는 기업 워크숍과 컨설팅에도 필요하다. 기업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갈수록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긴다. 그때마다 모든 일을 추가하면 돈보다 먼저 내 시간과 집중력이 바닥날 수 있다.
실험 하나에 쓸 자원을 정할 때는 다른 약속도 함께 봐야 한다. 이미 맡은 고객의 일을 늦추면서 새 일을 시도하고 있다면 그 비용은 나만 내는 것이 아니다. 잠을 계속 줄여 시간을 마련한다면 다음 날의 나도 비용을 낸다.
나는 해보면서 배우는 방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더더욱 멈출 자리가 필요하다. 이번에 어디까지 할지, 언제 돌아볼지 정해두면 결과가 아쉬워도 계속 밀어붙이는 대신 다음 판단을 할 수 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는 느낌만으로 한도를 늘리면, 처음에는 작았던 일이 어느새 생활 전체를 차지한다.
황금알만 세고 있으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우화가 있다. 농부는 매일 하나씩 나오는 알로 만족하지 못하고 거위의 배를 가른다. 더 많은 알을 한 번에 얻으려다가 앞으로 얻을 알까지 잃는다.
스티븐 코비는 성과와 그 성과를 만들어내는 능력 사이의 균형을 강조했다.[2] 이 구분을 일에 가져오면 눈앞의 매출과, 앞으로도 일을 해낼 몸과 관계를 따로 볼 수 있다.
일을 하나 더 받으면 매출은 바로 늘어날 수 있다. 충분히 쉬거나 배우는 시간은 그렇게 숫자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바쁠 때마다 쉬는 시간부터 줄이기 쉽다. 하지만 지친 상태로 계속 일하면 결과를 살피는 힘도,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힘도 줄어든다.
사람이 소진되는 기업을 돕고 싶다고 하면서, 내 일을 늘리는 방식도 똑같다면 이상하다. 반복 업무를 줄이려는 이유에는 다음 일을 더 받는 것뿐 아니라 직원들이 덜 지치는 것도 있다. 내 생활에도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친구와 저녁을 먹고, 운동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 시간을 갖기 위해 일하는 마음도 있는데, 일이 잘될수록 그 시간부터 없애고 싶지는 않다.
아끼기만 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것
배움과 경험에는 먼저 돈과 시간을 써야 한다. 새로운 분야를 알려면 익숙한 일에서 잠시 떨어져야 할 수도 있다. 안전한 선택만 하다 보면 원하는 일을 해보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간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위해 자원을 쓰는지 아는 것이다. 편해서 계속 내는 비용과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에 쓰는 비용은 다르다.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따라 쓰는 돈과 내가 좋아하는 경험에 쓰는 돈도 다르다.
더 많이 쓰겠다는 선택도 할 수 있다. 다만 그 대가로 무엇을 줄이고,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쳤을 때 무엇을 남길지 함께 생각한다. 지출을 줄일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좋아하는 것까지 무조건 없애면 무엇을 위해 남겨두는지 잊는다.
한때 나는 수입이 늘면 자유도 함께 늘어날 줄 알았다. 실제로는 쓰는 방식이 그 자유를 결정했다. 돈을 버는 속도에 맞춰 생활을 키우면 계속 벌어야 했고, 조금 남겨두면 다음 일을 고를 수 있었다.
배부르게 먹지 않겠다는 다짐은 내일의 나에게도 선택권을 남기겠다는 뜻이다. 오늘 잘됐다고 오늘 다 써버리지 않으려 한다. 새로운 일이 궁금해졌을 때, 아직 해볼 돈과 시간과 기운이 남아 있기를 바란다.
나는 그 여유를 갖고 싶다.
주석과 더 읽기
- 사라스 사라스바시의 이펙츄에이션. 다섯 원칙과 감당 가능한 손실.
- 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성과와 생산능력의 균형은 FranklinCovey의 공식 원칙에도 정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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