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스캐너에 두 번째로 합류했을 때, 당시 그로스 디렉터가 이런 농담을 했다. 자신이 이탈리아인인 것을 알지 않느냐며, 마피아에서는 나가기 어려우니 자기가 나가기 전에 먼저 나가지 말라고 했다. 그로스 디렉터는 고객과 사업의 성장을 이끄는 책임자다.
나는 한 번 떠났다가 실패를 겪고 돌아온 사람이었다. 그때 나를 다시 불러준 것도, 돌아온 뒤에 밀어준 것도 그 사람이었다. 농담이라 웃었지만, 다시 함께 일할 자리를 내어준 마음이 느껴졌다.
결국 우리는 거의 같은 시기에 회사를 떠났다. 마피아에서 같이 나온 셈이다. 회사를 떠난 뒤에도 관계는 남았다.
자존심보다 배울 것을 보기
또 한 명의 멘토는 나보다 어린 인도 출신 동료였다. 나이는 아래인데 회사에서는 나보다 두 단계 높은 직급에 있었다. 처음에는 솔직히 불편했다.
그런데 함께 일하면서 그 불편함이 부끄러워졌다. 업무에 필요한 전문성도 탄탄했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과 리더십에서도 배울 것이 많았다. 나보다 어린 사람이 내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됐다. 어려운 것은 그 사실보다 내 자존심이었다.
2020년에 싱가포르로 복귀했을 때 다시 함께 일하게 됐다. 그는 시리즈 B 단계의 스타트업에 Head of Growth로 합류했고, 나는 그곳에 Senior Growth Manager로 들어갔다. 시리즈 B는 초기 사업을 시작한 뒤 본격적으로 규모를 키우기 위해 추가 투자를 받은 단계다. 그는 회사의 성장 업무를 총괄했고, 나는 선임 담당자로서 성장을 위한 과제를 맡았다.
그에게 배웠던 사람이 다시 그와 함께 일하게 된 것이다. 내가 얻은 것은 조언만이 아니었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과 다시 일할 기회도 관계에서 나왔다.
멘토를 나보다 나이가 많고 정식으로 나를 가르쳐주는 사람으로만 생각하면 이런 관계를 놓친다. 내게 중요한 기준은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무엇을 배우는가였다.
답보다 기준을 배우는 관계
스카이스캐너의 그로스 디렉터는 일을 구조화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감각적으로 알아차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 판단을 다른 사람도 함께 쓸 수 있는 과정으로 만드는 데는 부족했다. 그 사람 곁에서 일하면서 내가 더 배워야 할 것이 보였다.
직접 강의를 해준 적은 별로 없었다. 어떤 질문을 먼저 하는지, 흩어진 일을 어떻게 정리하는지, 사람들과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지 보며 배웠다. 설명만 들었으면 이해했다고 넘어갔을 것들이 실제 일하는 모습을 보니 다르게 느껴졌다.
멘토의 가치는 모르는 답을 알려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내가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던 수준을 다시 보게 한다. 일을 잘한다는 말의 뜻이 더 구체적으로 바뀐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문제를 구조화하는 데 뛰어난 사람이 있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좋은 사람이 있다. 나는 누구에게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구분해보려 한다. 한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라고 삶의 모든 선택까지 대신 판단해줄 수는 없다.
다섯 명의 멘토를 떠올려보라는 것은 이런 의미다. 명망 있는 사람 다섯 명의 연락처를 모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더 잘하고 싶은 일에 실제 기준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돌아보자는 것이다. 동료나 후배도 들어갈 수 있고, 아직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글과 강연으로 꾸준히 배우는 사람도 들어갈 수 있다.
다섯 칸을 채우려다 같은 분야의 비슷한 사람만 떠오른다면, 내가 받는 조언도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수 있다.
상대가 나를 알 수 있게 돕기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좋은 조언이 자동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상대가 내 상황을 알아야 한다. 맥락 없이 큰 질문만 던지면, 아무리 경험이 많은 사람도 일반적인 답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핵심 과제와 고민을 짧게 공유하는 방법을 권한다. 상대와 소통하는 주기는 서로 맞추되, 내용은 세 가지면 시작할 수 있다.
-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 어디까지 해봤고 무엇이 막혔는가.
- 나는 어떤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가.
마지막 항목이 특히 중요하다. 내 생각을 먼저 꺼내야 상대도 내가 무엇을 놓쳤는지 볼 수 있다. 아직 답이 없더라도 고민한 흔적은 보여줄 수 있다. 어떤 선택지 사이에서 망설이는지 말하는 것만으로 대화가 구체적이 된다.
조언을 받고 나면 무엇을 해봤는지도 알려준다. 그 결과가 좋지 않아도 괜찮다. 왜 그렇게 됐는지 다음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매번 처음부터 설명하는 관계보다, 이전의 시도까지 알고 이야기하는 관계에서 더 깊은 질문이 나온다.
받은 도움을 이어가기
스티븐 코비는 신뢰를 ‘감정은행계좌’에 비유했다. 약속을 지키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행동할 때 관계에 신뢰가 쌓인다는 설명이다.[1]
나는 이 비유를 떠올리며, 내가 답을 얻고 싶을 때만 상대를 찾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상대가 관심 있어 할 자료를 나누거나, 도움이 될 사람을 연결할 수도 있다. 받은 조언을 어떻게 적용했는지 이야기하는 것도 기여다.
경험이 훨씬 많은 사람에게 같은 크기의 도움을 돌려주기는 어려울 수 있다. 꼭 같은 사람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먼저 겪어본 일을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다. 도움을 받은 관계가 다음 관계로 이어지는 것이다.
익스피디아를 떠날 때 후임과 약 3주 동안 함께 일하며 업무를 넘겼다. 익스피디아는 숙박과 항공권 등을 예약하는 온라인 여행 서비스다. 후임은 질문이 정확했고, 내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부분까지 파악해 구조화했다. 이후에는 쿠팡에서 그로스 디렉터로 일하게 됐다.
그때 나는 알려주는 사람이었지만 나도 배웠다. 내가 경험으로 알고 있던 것을 설명하려니 말로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드러났다. 후임의 질문이 내 이해를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역할은 그렇게 겹친다.
다음 대화를 준비하는 데 AI를 쓰기
당장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다면 책이나 공개된 강연에서 출발할 수 있다. AI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고 생각을 정리해볼 수도 있다. 앞서 말한 세 가지, 지금 하는 일과 막힌 부분, 내가 생각한 방향을 그대로 건네보면 된다.
내 설명에서 빠진 정보는 무엇인지, 다른 방향을 택할 이유는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다. 그렇게 질문을 다듬은 뒤 실제로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보여주면, 처음부터 무엇을 물어야 할지 헤매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은 내 설명 속의 나와 실제로 일하는 내가 어떻게 다른지도 말해줄 수 있다.
지금 떠오르는 사람의 이름과 그에게서 배우는 것을 나란히 적어보자.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아도 그 관계부터 이어갈 수 있다. 그리고 나를 떠올리며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일지도 생각해보자.
회사는 떠날 수 있고 직함은 바뀐다. 그래도 함께 일하며 쌓은 기준과 신뢰는 남는다. 나는 누군가를 통해 내가 아는 세계를 넓혀왔고, 내가 배운 것을 나누며 다시 배워왔다. 멘토를 둔다는 것은 그 관계에 계속 참여하는 일이다.
주석과 더 읽기
- 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감정은행계좌는 관계에서 신뢰가 쌓이고 줄어드는 과정을 설명하는 비유다. FranklinCovey 공식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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