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 일이 잘 풀리던 시기가 있었다. 클라이언트가 늘고, 의뢰가 쌓이고, 통장 잔고가 올라갔다. 자연스럽게 생활이 바뀌었다. 커피 미팅이 호텔 라운지로 옮겨갔다. 택시를 더 자주 탔다. 좋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다. 누군가가 나를 대접하기 시작했고, 나도 누군가를 대접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수입은 늘었는데, 남는 돈은 전과 비슷했다. 배부르게 먹기 시작한 거다.
부의 공식은 단순하다
버는 돈에서 쓰는 돈을 빼면, 그게 부다. 이 공식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거의 아무도 지키지 않는다.
수입이 늘면 지출이 따라 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생활 수준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연봉이 오르면 차를 바꾸고, 집을 넓히고, 더 비싼 동네로 이사한다. 수입이 두 배가 돼도 체감 여유는 그대로인 사람이 수두룩하다.
적게 써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건 금욕이 아니다.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것과,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따라 하는 것을 구분하는 일이다. 비싼 레스토랑에서 먹는 밥이 진짜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아니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자신의 이미지가 좋은 건가?
대접받기 시작하면 배부르기 시작한다. 배부르면 둔해진다. 둔해지면 위험 신호를 못 본다.
잃어도 괜찮은 만큼만 걸어라
이펙츄에이션(Effectuation) 이론에 "Affordable Loss"라는 개념이 있다. 번역하면 "감당 가능한 손실." 사라스 사라스바시 교수가 성공한 창업자들의 의사결정 패턴을 연구해서 발견한 원칙이다.
핵심은 이거다. 예상 수익을 극대화하려 하지 마라. 대신, 잃어도 괜찮은 만큼만 걸어라.
대부분의 사람은 반대로 한다. "이걸 하면 얼마 벌 수 있을까?"를 먼저 계산한다. 수익 예측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 아무도 모른다. 사업계획서의 매출 추정은 거의 대부분 틀린다. 위로든 아래로든.
반면, 잃어도 괜찮은 금액은 내가 정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에 6개월의 시간과 1천만 원을 쓸 수 있는가? 실패해도 생활이 유지되는가? 이 질문은 답할 수 있다. 통제할 수 있는 변수에 집중하는 거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투자에서 비슷한 원칙을 "안전마진(Margin of Safety)"이라 불렀다. 주식의 내재가치보다 충분히 싸게 사면, 내 분석이 틀려도 큰 손해를 피할 수 있다. 이건 투자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인생 전반의 의사결정에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다.
욕심부리지 마라. 노력한 만큼만 먹어라. 안전마진을 확보해라. 이 세 가지는 결국 같은 말이다.
복리라는 마법
워런 버핏의 순자산 그래프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그의 자산 대부분은 60대 이후에 만들어졌다. 만약 버핏이 60세에 은퇴했다면? 우리는 그를 "투자를 좀 잘한 노인" 정도로 기억했을 거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인생의 모든 수익은 복리에서 나온다."
복리는 시간의 편이다. 짧은 시간에 큰 수익을 노리는 건 투기다. 긴 시간에 걸쳐 작은 수익이 쌓이도록 설계하는 건 투자다. 이 차이를 아는 것만으로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반복되는 게임을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번의 거래에서 상대를 속여 큰돈을 벌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순간 게임이 끝난다. 다시는 그 상대와 거래할 수 없다. 반면, 정직하게 거래하면 한 번의 이익은 작더라도, 신뢰가 쌓이고, 거래가 반복되고, 관계가 복리로 성장한다.
배부르게 먹는 사람은 한 끼에 몰아 먹는다. 복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매 끼를 적당히 먹되, 오래 먹는다.
거위의 배를 가르지 마라
스티븐 코비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이솝 우화를 꺼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농부는 매일 하나씩 나오는 황금알이 답답해서 거위의 배를 갈랐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거위는 죽었다.
"효과성은 황금알(산출물)과 거위(생산능력) 사이의 균형이다."
코비의 통찰은 명확하다. 단기 성과에만 집중하면, 그 성과를 만들어내는 능력 자체가 죽는다. 몸을 혹사해서 단기간 성과를 내면, 건강이 무너진다. 팀원을 갈아서 매출을 올리면, 팀이 무너진다. 고객에게 과도한 가격을 매기면, 관계가 무너진다.
생산능력에 투자해야 한다. 건강, 관계, 학습, 시스템 — 이것들은 황금알이 아니라 거위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당장 내지는 않지만, 이것들이 살아 있어야 황금알이 계속 나온다.
배부르게 먹는다는 건,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과 같다. 지금 당장 더 먹으려고, 내일 먹을 것을 포기하는 거다.
적당히 먹는 법
거창할 것 없다.
지출을 추적해라. 무엇에 돈을 쓰는지 모르면 줄일 수도 없다. 한 달만 기록해봐라. 놀라울 만큼 불필요한 지출이 보인다.
"이게 없으면 불행한가?" 물어라. 대부분의 소비는 관성이다. 습관적으로 사고, 습관적으로 쓴다. 진짜 행복에 기여하는 소비만 남겨라.
안전마진을 설계해라. 수입의 일정 비율은 무조건 남겨라. 투자든, 저축이든, 비상금이든. 이건 절약이 아니라 자유를 사는 거다. 안전마진이 있는 사람은 나쁜 기회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다.
게임을 길게 해라. 한 방을 노리지 마라. 작지만 반복 가능한 수익 구조를 만들어라. 복리가 일하게 해라.
배부르게 먹던 시절, 나는 자유롭다고 착각했다. 좋은 곳에서 먹고, 좋은 곳에서 만나고,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때가 가장 자유롭지 못한 시기였다. 높아진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이 벌어야 했고, 더 많이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했다.
적당히 먹는 건 초라한 게 아니다. 내일도 먹을 수 있도록, 거위를 살려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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