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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9. 5명의 멘토를 둬라

의도적으로 멘토를 설계하라. 가장 가까운 5명이 나를 결정한다.

· By Simpson Gyusup Sim · 9 min read

스카이스캐너에 두 번째로 합류했을 때, 당시 그로스 디렉터가 이런 말을 했다.

"너 나 이탤리언인 거 알지? 마피아에서 나가기 어렵다. 나 나가기 전에 나가지 말라."

농담 반 진담 반. 하지만 그 말에는 무게가 있었다. 나는 한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이었다. 더닝크루거 곡선의 꼭대기에서 자신감이 넘쳐 다른 곳으로 갔다가, 추락을 경험하고, 다시 받아준 조직. 그때 나를 다시 불러준 것도, 돌아온 나를 밀어준 것도 당시 그로스 디렉터였다.

결국 우리는 거의 동시에 회사를 나왔다. 마피아에서 같이 나간 셈이다.


두 번째 멘토는 나보다 어렸다. 인도 출신. 나이는 아래인데 직급은 2레벨 위였다. 처음에는 솔직히 불편했다. 하지만 같이 일하면서 그 불편함이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하드스킬이 탄탄했고, 소프트스킬도 좋았고, 리더십까지 갖추고 있었다. 나이와 멘토십은 상관이 없다는 걸 그 친구한테 배웠다.

멘토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틀렸다. 기준은 하나다. 내가 배울 수 있는 사람인가. 그게 전부다. 나이, 직급, 국적 — 다 부차적이다. 이 친구에게서 배운 건 기술만이 아니었다. 겸손의 기준이었다.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느냐는 질문은, 결국 내 자존심과 성장 중 뭘 택하겠느냐는 질문이다.

2020년, 싱가포르로 다시 복귀했을 때 이 친구가 나를 불러줬다. 그의 회사에서 다시 함께 일하게 됐다. 멘토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다는 증거다. 내가 배웠고, 그도 나와 일하고 싶어 했다. 좋은 멘토 관계는 결국 서로를 다시 찾게 되는 관계다.


혼자서는 안 되는 이유

퍼포먼스 공식에서 Social Capital — 모를 때 찾아갈 수 있는 사람 — 은 곱셈의 한 요소다. 이게 0이면 나머지가 아무리 높아도 전체가 0이 된다.

하지만 멘토의 가치는 단순히 "모를 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이미 잘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그 존재 자체가 기준점이 된다. "이 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할 때, 그 사람의 수준이 눈에 들어온다. 기준이 올라간다.

스카이스캐너의 그로스 디렉터는 그로스를 체계적으로 설계하는 사람이었다. 감이 아니라 구조로 일하는 사람. 나는 감이 좋은 편이었지만, 그 감을 시스템으로 만드는 법은 몰랐다. 그 디렉터 곁에서 일하면서 그걸 배웠다. 직접 가르쳐준 적은 별로 없다. 옆에서 일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 배웠다. 멘토의 가장 강력한 교육 방식은 시범이다.


멘토가 나를 신경 써야 하는 이유

여기서 많은 사람이 놓치는 게 있다. 멘토 관계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가르쳐주세요"라고 찾아가는 것만으로는 지속되지 않는다. 멘토가 나를 신경 써야 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Pay it forward. 멘토가 준 것의 가치를 돌려주는 건 어렵다. 경험과 역량의 차이가 있으니까.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다. 멘토가 관심 있는 분야의 정보를 먼저 공유하거나, 멘토의 네트워크에 도움이 될 사람을 연결하거나, 단순히 배운 걸 실행에 옮기고 그 결과를 보여주는 것.

스티븐 코비가 말한 감정은행계좌(Emotional Bank Account)라는 개념이 있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보이지 않는 신뢰 잔고가 있다. 약속을 지키면 입금, 어기면 출금. 관심을 보이면 입금, 무관심하면 출금. 이 잔고가 마이너스가 되면 관계가 무너진다.

멘토 관계도 마찬가지다. 배우기만 하고 돌려주는 게 없으면 잔고가 줄어든다. 성장을 공유해야 그들도 신이 난다. 멘토에게 가장 큰 보상은 멘티의 성장이다. "당신 덕분에 이만큼 왔습니다"라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이만큼 온 모습을 보여주는 것.


매주 아젠다를 공유하라

멘토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은 정기적인 아젠다 공유다.

매주 멘토에게 이번 주의 핵심 과제와 고민을 공유한다. 길게 쓸 필요 없다. 3줄이면 충분하다. "이번 주에 이걸 하고 있고, 여기서 막혀 있고, 이런 방향으로 가려 한다." 멘토는 바쁜 사람이다. 한 시간짜리 미팅을 매주 잡으려면 부담이다. 하지만 3줄짜리 메시지에 한 줄짜리 피드백을 주는 건 부담이 적다.

이 루틴이 쌓이면 멘토가 내 맥락을 이해하게 된다. 매번 처음부터 설명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리고 그 맥락 위에서 나오는 피드백은 일반적인 조언과 차원이 다르다.


청출어람

익스피디아에서 일할 때의 이야기다. 내가 떠나면서 후임에게 인수인계를 했다. 약 3주간 업무가 겹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후임은 놀라운 속도로 모든 것을 흡수했다. 질문이 정확했고, 한 번 설명한 건 두 번 묻지 않았고, 내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부분까지 스스로 파악해서 구조화했다.

그 후임은 지금 쿠팡의 그로스 디렉터가 됐다. 나를 훌쩍 뛰어넘었다. 청출어람. 멘토의 가장 큰 보람은 이거다. 내가 가르친 사람이 나보다 더 높이 가는 것.

멘토링은 양방향이다. 가르치면서 배운다. 설명하면서 내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가 드러난다. 후배의 질문이 내 사고의 빈틈을 찌른다. 그래서 멘토를 두는 것만큼, 누군가의 멘토가 되는 것도 중요하다.


안 되면 AI랑이라도 하라

"주변에 멘토가 될 만한 사람이 없어요." 이 말을 자주 듣는다. 맞다. 쉽지 않다. 특히 한국에서, 특히 내가 원하는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기 어려운 환경에서.

그러면 AI랑이라도 하라. 진심이다.

AI에게 내 주간 아젠다를 공유하고, 피드백을 요청하고, 사고를 확장하는 질문을 해봐라. 완벽한 멘토는 아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직관적 조언은 못 해준다. 하지만 내 사고를 정리하는 데는 놀라울 정도로 유용하다. 그리고 24시간 가능하고, 판단하지 않고, 지치지 않는다.

물론 AI가 인간 멘토를 대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멘토가 없으니까 아무것도 안 한다"보다는 "AI라도 활용하면서 인간 멘토를 찾아간다"가 훨씬 낫다. 5명의 멘토 중 1명은 AI여도 된다.


5명이라는 숫자

짐 론이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5명의 평균이다." 이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핵심은 맞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

5명의 멘토. 거창하게 들리지만,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

배우고 싶은 것을 잘 실천하는 사람을 곁에 둬라. 직접 만나는 사람 2명.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사람 2명. 그리고 책이나 콘텐츠를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는 사람 1명. 이 정도면 충분하다.

중요한 건 멘토의 수가 아니라, 그 관계를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정기적으로 소통하고, 성장을 공유하고, 감정은행계좌의 잔고를 유지하는 것.


스카이스캐너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회사를 떠나도 사람은 남는다.

멘토를 둬라. 그리고 당신도 누군가의 멘토가 돼라. 곱셈 공식에서 Social Capital이 0이 되지 않도록. 마피아처럼 쉽게 나갈 수 없는, 그런 관계를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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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son Gyusup Sim
Updated on 2026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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