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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4. 머릿속 도구상자 — 멀티 사고 모델

하나의 렌즈로는 세상이 왜곡된다. 여러 멘탈모델을 장착하라.

· By Simpson Gyusup Sim · 9 min read

Part 2: 생각의 도구를 업데이트하라

같은 상황을 두고 어떤 사람은 기회를 보고, 어떤 사람은 위기를 본다. 차이는 머릿속 도구상자에 있다. 좋은 판단은 좋은 프레임워크에서 나온다.

개발자처럼 사고한다는 건 코드를 짠다는 뜻이 아니다. 문제를 쪼개고, 가설을 세우고, 빠르게 실험하는 습관이다. 이 사고방식은 직업과 무관하게 쓸모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프레임워크가 확신이 되는 순간, 도구는 감옥이 된다. "나는 안다"는 믿음이 가장 위험하다.

이 파트에서는 머릿속 도구를 점검하고, 더 나은 것으로 교체하는 법을 다룬다.


2014년, 싱가폴 스카이스캐너에서 일할 때였다. 그로스라는 단어가 실리콘밸리에서 막 아시아로 넘어오던 시기였고, APAC에서 그 파도가 일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그 파도 위에 있었다.

운이 좋았다. 타이밍이 맞았다. 스카이스캐너는 그로스와 애자일에 진심이었고, 나는 스폰지처럼 모든 걸 빨아들였다. 배운 건 바로 블로그에 썼다. 배우고, 쓰고, 또 배웠다.

그로스, 애자일, 스포티파이의 스쿼드 모델. 지금은 흔한 단어지만, 이런 것들은 글로 읽어서는 체감되지 않는다. 조직문화다. 직접 그 안에서 일하며 부딪혀봐야 비로소 이해되는 종류의 지식이다. 20대에 싱가포르에서 일한 경험도 마찬가지였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의 감각 — 이런 건 책에서 배울 수 없었다. 몸으로 배웠다. 멘탈 모델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읽어서 쌓을 수 있는 것과, 경험해야만 쌓이는 것. 후자를 과소평가하면 도구상자에 구멍이 생긴다.

돌이켜보면 그때 가장 중요했던 건 특정 기술이 아니었다. 탈 만한 파도를 알아보는 눈, 그리고 보이면 빠르게 올라타는 결단이었다. 파도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좀 더 준비되면"이라고 말하는 사이에 파도는 지나간다.


도구상자가 비어 있으면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는 자기가 가진 도구로 해결하려 한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는 그 말. 찰리 멍거는 이걸 정확히 짚었다.

"머릿속에 도구가 망치 하나뿐인 사람에게 모든 문제는 못처럼 보인다."

멍거가 제안한 건 단순하다. 도구를 늘려라. 경제학, 심리학, 물리학, 생물학 — 여러 분야의 사고 모델을 머릿속에 넣어두면, 같은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다. 셰인 패리시는 이걸 체계화해서 "멘탈 모델"이라 불렀고, 나는 이 개념을 알고 나서 문제를 보는 방식이 바뀌었다.

예를 들어, 그로스 전략을 짤 때 "이 채널의 CTR을 어떻게 올릴까"만 생각하는 사람과, "이 시스템의 피드백 루프가 어디서 끊어지는가"를 생각하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해결책에 도달한다. 전자는 채널 하나를 최적화하고, 후자는 시스템 전체를 재설계한다.

도구상자가 클수록 보이는 게 달라진다.


감이 맞을 때, 감이 틀릴 때

그런데 여기서 까다로운 문제가 하나 있다. 경험이 쌓이면 "감"이 생긴다. 이 감을 믿어야 할까, 의심해야 할까?

게리 클라인은 감을 믿으라고 했다. 소방관, 군인, 체스 마스터 — 이들의 직관은 수천 시간의 반복 경험에서 나온 것이고, 빠른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 분석보다 훨씬 정확하다고. 클라인은 이걸 "전문가의 직관"이라 불렀다.

다니엘 카너만은 정반대를 말했다. 인간의 직관은 편향 덩어리라고. 확증 편향, 가용성 편향, 앵커링 — 우리의 뇌는 빠르게 판단하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그 빠른 판단이 틀릴 때가 너무 많다고.

재밌는 건, 이 두 사람이 수년간 논쟁하다가 결국 공동 논문을 썼다는 거다. "Conditions for Intuitive Expertise: A Failure to Disagree" (2009). 제목부터 좋다. "동의하지 않는 데 실패했다."

그들이 합의한 건 이거다: 직관이 믿을 만한 조건이 있다.

첫째, 충분히 규칙적인 환경이어야 한다. 소방 현장은 규칙적이다. 불은 물리 법칙을 따르니까. 하지만 주식 시장은 규칙적이지 않다. 패턴처럼 보이는 것의 대부분이 노이즈다.

둘째, 오랜 연습과 빠른 피드백이 있어야 한다. 체스 선수는 수를 두면 바로 결과를 본다. 하지만 채용 담당자가 "이 사람은 잘할 것 같다"는 감으로 뽑은 사람의 성과를 확인하려면 몇 년이 걸린다.

이 두 조건이 충족되면 감을 믿어라. 안 되면 데이터와 프레임워크에 의존해라.


나는 이 구분을 알고 나서 내 의사결정이 달라졌다. 그로스 실험을 설계할 때는 감을 쓴다. 수백 번 실험을 돌려봤고, 피드백이 빠르니까. 하지만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지 같은 결정에서는 감을 일부러 의심한다. 피드백이 느리고, 내가 본 샘플이 편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어떤 도구를 쓸지 아는 것만큼, 언제 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성숙한 훔치기

T.S. 엘리엇이 평론집 《신성한 숲》에서 이런 말을 했다.

"미숙한 시인은 모방하고,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 나쁜 시인은 훔쳐온 것을 훼손하지만, 좋은 시인은 그것을 훨씬 더 나은 것, 혹은 적어도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어낸다."

멘탈 모델을 쌓는 건 결국 이 "성숙한 훔치기"의 과정이다.

멍거의 다학제적 사고를 읽고 "와, 멍거 대단해"로 끝나면 미숙한 모방이다. 그 사고방식을 내 맥락에 가져와서, 내 그로스 전략에, 내 인간관계에, 내 투자 판단에 적용해서 나만의 것으로 만들면 — 그게 성숙한 훔치기다.

클라인-카너만 논쟁을 읽고 "직관은 위험해"로 정리하면 나쁜 훔치기다. "직관이 작동하는 조건을 구분해서, 조건이 맞을 때만 믿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 그게 좋은 훔치기다.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생각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좋은 생각은 다른 분야에서 온 아이디어를 내 맥락에 맞게 재조합한 것이다. 매트 리들리 식으로 말하면, 아이디어가 서로 만나서 교배할 때 혁신이 탄생한다.

중요한 건 뭘 훔칠지 고르는 눈, 그리고 그걸 내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이다.


도구상자를 채우는 법

거창할 것 없다. 내가 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읽어라. 단, 한 분야만 읽지 마라. 그로스 하는 사람이 그로스 책만 읽으면 도구상자에 망치만 쌓인다. 심리학을 읽고, 역사를 읽고, 물리학의 기본 원리를 읽어라. 스테디셀러를 읽어라. 시간의 검증을 통과한 책에는 이유가 있다.

써라. 읽기만 하면 흘러간다. 블로그든, 노트든, 누군가에게 설명하든 — 배운 걸 자기 말로 다시 쓰는 순간 내 것이 된다. 나는 스카이스캐너 시절부터 배운 걸 바로 블로그에 썼다. 글을 쓰면서 내가 뭘 이해했고 뭘 이해 못 했는지가 드러났다.

섞어라. 서로 다른 분야의 모델을 의도적으로 충돌시켜라. "이 마케팅 문제를 생물학적으로 보면?" 같은 엉뚱한 질문이 의외의 답을 준다. 멍거가 말한 "격자 구조(lattice of mental models)"가 이거다. 모델 하나하나는 단편이지만, 여러 개가 교차하면 입체적인 판단이 가능해진다.

버려라. 도구상자를 채우는 것만큼, 안 맞는 도구를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한때 유용했던 프레임워크가 지금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이게 Unlearn이다. 새 도구를 넣으려면 낡은 도구를 빼야 할 때가 있다.


파도를 타려면 파도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파도를 읽으려면 바다를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여러 각도가 멘탈 모델이다.

도구상자가 클수록, 더 많은 파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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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son Gyusup Sim
Updated on 2026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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