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dership Circle Profile이라는 리더십 진단 도구가 있다. 주변 동료, 상사, 부하직원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익명으로 평가하는 360도 피드백 기반의 진단이다. 결과는 원형 차트로 나온다. 원의 상단에는 창의적 역량 — 비전, 관계, 자기인식 같은 것들이 배치되고, 하단에는 반응적 성향 — 비판, 통제, 자기방어 같은 패턴이 배치된다.
상단이 클수록 주도적으로 이끄는 리더, 하단이 클수록 반응적으로 움직이는 리더라는 뜻이다. 나는 이걸 받았을 때 상단보다 하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반응성 영역에서 "비판적(Critical)"과 "오만(Arrogance)"이 높게 나왔다.
처음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기준이 높은 거지, 비판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옳은 방향을 아는 거지, 오만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평가는 달랐다. "Simpson은 좀 날카로워." "자기 방식 아니면 잘 인정 안 해."
둘 다 사실이었다. 내 의도와 타인이 경험하는 나 사이에 간극이 있었다. 그리고 리더십은 의도가 아니라 영향으로 측정된다는 걸, 그 차트 한 장이 알려줬다.
확신의 매력
우리는 확신에 찬 사람에게 끌린다. 복잡한 세상에서 "이렇게 하면 됩니다"라고 단언하는 사람은 안도감을 준다. 불확실성이라는 불편함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주니까.
하지만 세상은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나심 탈레브는 이런 말을 했다.
"진짜 위험한 건 모르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확신에 찬 사람일수록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복잡한 문제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는 사람은 두 부류다. 정말로 그 분야를 깊이 이해해서 복잡함을 관통하는 원칙을 찾아낸 사람이거나, 복잡함을 아예 보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고 후자는 대부분 더 자신감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진짜 아는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영역도 보이기 때문에 단언을 조심한다. 반면 모르는 사람에겐 그 모르는 영역 자체가 보이지 않으니까, 거침이 없다.
의심 한 꼬집 — Take it with a grain of salt
더 까다로운 문제가 있다. 우리 각자 안에도 확신이 있다는 거다. 남의 확신만 경계할 게 아니라, 내 확신도 점검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믿음 중 상당수는 패키지로 받아들인 것이다. 업계의 통념, 학교에서 배운 프레임워크, 선배가 알려준 방법론. 이것들이 처음에 유용했기 때문에 한 덩어리로 수용한다. 그런데 패키지 안에는 검증된 것과 검증되지 않은 것이 섞여 있다.
스카이스캐너에서 일할 때 나는 심리학자 캐럴 드웩의 성장 마인드셋을 거의 신봉했다. 능력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학습과 도전을 통해 발달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특히 똑똑함보다 노력을 칭찬하라는 메시지에 끌렸다. 1998년 클라우디아 뮬러와 드웩의 실험에서, 지능을 칭찬받은 아이들보다 노력을 칭찬받은 아이들이 실패 뒤에 더 잘 버티고 어려운 과제를 골랐다.
나는 이걸 실무의 언어로 바꿔 받아들였다. 결과보다 입력을 칭찬하고 보상하라. 운이 섞인 숫자보다 시도, 학습, 협업 같은 통제 가능한 과정에 주목하라는 뜻이었다. 결과만 숭배하는 조직을 교정하는 데는 유용한 원칙이었다.
하지만 교정 원칙을 진리로 만들면 다시 문제가 생긴다. 오래 일한 시간, 실험한 횟수, 회의와 보고서의 양도 모두 입력이다. 방향이 틀렸는데 오래 버틴 노력까지 보상하면 사람은 성과가 아니라 노력하는 모습을 연출하게 된다.
칭찬도 맥락을 탄다. 2018년 제이미 아메미야와 밍테 왕은 청소년이 노력 칭찬을 "능력이 부족하니 열심히라도 해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빈말처럼 들리는 순간 칭찬은 격려가 아니라 낮은 기대가 된다.
성장 마인드셋을 가르치면 성취가 크게 오른다는 주장도 그대로 굳지 않았다. 2023년 브룩 맥나마라와 알렉산더 버고인의 메타분석은 연구 설계와 편향 문제를 짚으며, 양질의 연구에서는 학업 성취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지금은 노력의 양보다 과정의 질을 본다. 중요한 문제를 골랐는가. 근거 있는 가설을 세웠는가. 피드백을 받고 전략을 바꿨는가. 실패에서 다음 판단을 개선할 학습을 남겼는가.
좋은 과정에서 나쁜 결과가 나왔다면 판단과 학습은 인정하되 전략은 바꿔야 한다. 나쁜 과정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성공은 축하하되 그 방식을 모범으로 만들면 안 된다.
칭찬은 통제 가능한 좋은 과정에 둔다. 피드백은 과정과 결과의 연결에 둔다. 책임은 결과와 학습 모두에 둔다. 입력과 출력 중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라, 둘 사이의 인과를 계속 점검하는 것이다.
영어에는 Take it with a grain of salt라는 표현이 있다. 곧이곧대로 믿지 말고 의심 한 꼬집을 곁들이라는 뜻이다. 성장 마인드셋처럼 좋은 사상일수록 이 태도가 필요하다. 유용한 부분을 취하되, 패키지 전체를 신봉하지 않는다.
나는 가끔 더 거친 비유를 쓴다. 악인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면 배운다. 배운다고 그 사람 전체를 선인으로 승인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드웩을 악인에 빗대는 게 아니다. 통찰 하나를 얻었다고 사람이나 이론 전체를 승인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일론 머스크가 자주 언급하는 "제1원칙 사고(First Principles Thinking)"가 이걸 다룬다. 기존의 가정을 걷어내고, 가장 기본적인 사실부터 다시 쌓아 올리는 것. 로켓 비용이 왜 비싼가? "원래 비싸니까"가 아니라, 원재료 비용은 얼마인가부터 시작하는 것.
패키지를 풀어보는 건 불편하다. "내가 여태 해온 게 틀렸나?"라는 질문이니까. 하지만 그 불편함을 피하면, 잘못된 전제 위에 정교한 실행을 쌓는 꼴이 된다.
짬의 종말
여기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를 봐야 한다.
물류 업계 이야기다. 트럭 기사들은 경력이 쌓이면 강력한 경쟁력을 가졌다. 어떤 길이 빠른지, 어떤 화주가 좋은지, 가격을 어떻게 네고하는지 — 이 모든 게 수년간 쌓은 암묵지였다. 짬이 곧 파워였다. 신참은 따라올 수 없었다.
그런데 우버 화물 같은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판이 바뀌었다. 내비게이션을 제공하고, 가격을 알고리즘이 결정하고, 화주를 매칭해주고, 기사를 평가한다. 고객 입장에서 경력 20년 기사에게 웃돈을 줄 이유가 사라졌다. 알고리즘이 경력 2년 기사에게도 같은 수준의 정보를 제공하니까.
짬 있는 기사들의 확신 — "이 바닥은 이렇게 돌아가" — 이 확신이 알고리즘에 의해 무력화된 거다.
이건 트럭 업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업계에서 10년은 해야 감이 온다"라는 말이 점점 힘을 잃고 있다. AI와 플랫폼이 암묵지를 명시지로 전환하면서, "경험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의 영역이 줄어들고 있다.
확신의 근거였던 경험 자체가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이 경험이 무가치하다는 뜻은 아니다. 경험에서 추출한 원칙은 여전히 강력하다. 하지만 "나는 오래 했으니까 안다"라는 확신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왜 아는지, 그 앎의 전제가 여전히 유효한지를 계속 점검해야 한다.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
확신이 위험하다면, 대안은 뭘까? 불확실성을 견디는 것이다. 유일한 확실성은 불확실성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허무주의가 아니다. 존 키츠가 "부정적 능력(Negative Capability)"이라 부른 것에 가깝다. 불확실함과 의문 속에 머무를 수 있는 능력. 성급하게 답을 내리지 않고, 열린 상태를 유지하는 것.
"성급하게 사실과 이성을 좇지 않고, 불확실함과 의문과 회의 속에 머무를 수 있는 능력." — 존 키츠
실무에서 이건 이렇게 작동한다. "이 전략이 맞는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가설은 이거고, 검증 방법은 이거고, 2주 후에 판단하겠다." 이 문장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으면, 불확실성을 견디고 있는 거다.
반대는 이거다. "이건 무조건 된다. 바로 올인하자." 또는 "이건 절대 안 된다. 시간 낭비야." 이렇게 말하는 순간, 검증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거다.
좋은 의사결정자는 확신과 겸손 사이의 좁은 길을 걷는다. 방향에 대한 확신은 있되, 구체적인 경로에 대해서는 유연하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저기다"는 분명히 말하되, "가는 길은 바뀔 수 있다"를 동시에 품는다.
의도와 영향 사이
다시 Leadership Circle 이야기로 돌아온다.
"비판적"과 "오만"이라는 결과를 받고 나서 내가 한 가장 중요한 일은, 의도와 영향을 분리해서 보는 법을 배운 것이었다.
나는 "높은 기준"이라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경험한 건 "날카로움"이었다. 내가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할 때, 나는 기준을 지키고 있다고 느꼈지만, 듣는 사람은 부정당하고 있다고 느꼈다.
의도가 좋다고 영향이 좋은 건 아니다. 그리고 확신이 강할수록 이 간극을 보지 못한다. "내가 맞으니까"라는 확신이 타인의 경험을 무시하게 만든다.
한국 스타트업에서 6개월 만에 잘렸을 때도, 돌이켜보면 같은 패턴이었다. 나는 전투에서 이기고 있었다. 논쟁에서 이기고, 분석에서 이기고, 전략적 판단에서 이겼다. 하지만 전쟁에서 졌다. 사람들이 나와 일하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까.
확언하는 사람을 경계하라. 그리고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대상은, 거울 속에 있다.
확신은 편하다. 불확실성은 불편하다. 하지만 Leadership Circle 원형 차트가 보여준 것처럼, 편한 쪽이 항상 맞는 쪽은 아니다.
반응적 확신의 반대는 우유부단이 아니다. 근거를 점검하고, 전제를 의심하고, 의도와 영향의 간극을 인식하면서도 행동하는 것이다.
그 차트에서 내 "비판적"과 "오만" 점수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걸 부정하고 싶었다. 지금은 그걸 보고 고마워한다. 내 확신의 사각지대를 보여준 관측 장치였으니까.
확언하는 사람을 경계하라. 특히 그 사람이 나일 때.
확신을 경계하는 법을 배웠다면, 다음 질문은 이거다. 확신이 무너진 자리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철학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다. 단, 하나의 철학이 아니라 여러 철학을 맛보는 법을 알아야 한다.